낭만주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대표적인 화가인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외젠 들라크루아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낭만주의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예술상 및 철학상의 경향. 개성을 존중하고 자아의 해방을 주장하며 상상과 무한한 것을 동경하는 주관적, 감정적인 태도가 그 특징입니다...
이는 정신생활의 전역에 영향을 미친 주의 또는 경향이며 미술상으로는 고전주의라든가 바로크 등에 대해 일컬어지는 것 같은 독자적인 명확한 양식을 낳게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의 차가운 형식 존중에 대한 반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프랑스에서는 예리코(1791~1824)에서 시작되어 들라크루아(1798~1863)에 이르면서부터 자유분방한 색채, 유동적인 필치, 동감에 찬 구성 등을 갖춘 영웅적 작품을 남기게 되었죠.
오늘은 저번 고전주의에 이어서 고전주의와 가장 대비되는 낭만주의에 대해서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낭만주의는 서유럽에서 발생한 미술적, 문학적, 지적 사조이다. 18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800년~1850년 사이에 낭만주의는 정점을 찍었죠.
(‘사조’ 사전적 의미 : 생각 사, 밀물 조 : 사상의 허름한 시대의 사상의 일반적인 경향을 말한다)
카스 파로 다비트 프리드리히
외젠 들라크루아 등 낭만주의 화가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19세기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의 가장 중요한 풍경화가 입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필리프 오토 룽게(필리프 오토 룽게는 18세기 말의 독일 낭만주의 화가로 풍경화에 능했으며, 예술 이론가로서 색에 관한 논문을 집필하기도 했다.)와 함께 초기 낭만주의 회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특히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중기 시대에 제작한 우의적인 풍경화로 유명한데, 미술가로서 그의 주요 관심사는 자연에 대한 성찰이었고,
상징적이고 반고전주의적으로 간주하는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자연계에 대한 주관적 감정이 담아 표현한 작품인 것처럼 보입니다.
프리드리히는 당시 스웨덴 영토였던 포르투갈어 포메른 주의 그라이프스발트(그라이프스발트: 그라이프스발트는 독일 메클렌부르크 포르투갈어 폼 모른 주에 있는 도시이다.
포르투갈어 폼 모른 그라이프스발트지구의 행정 중심도시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포르투갈어 포메른 주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프리드리히는 미술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프리드리히는 1798년까지 코펜하겐에서 수학을 하였고, 이후에는 드레스덴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드레스덴 : 엘베강 연안의 마이센과 피를 나의 중간인 베를린 남쪽 약 189km 지점에 있어, 엘베강에 의해서 좌안의 구시가와 우안의 신시가로 나뉘며, 7개의 교량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1711∼1722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궁전을 비롯하여 왕성, 드레스덴미술관 등 유명한 건축물과 회화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드레스덴 교향악단·국민극장 등이 있어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유럽 전역에서 물질주의적(모든 일을 물질 위주로 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물질주의적인 세계관) 사회에 대한 점증하는 환멸로 영혼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발흥하기 시작한 시기에 성년(성년은 법률상 완전한 행위능력자가 되는 연령을 말한다.)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정신적 태도에서의 변화는 자연계에 대한 새로운 재평가를 통해서 표출되었으며,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윌리엄 터너 그리고 존 컨스터블과 같은 미술가들은 자연을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인위적인 측면과 대립하는 신성한 창조물’로 묘사하려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한 결과 프랑스 조각가인 다비드 당제로(David d'Angers 1788~1856년) 와 같은 동시대의 미술가는 프리드리히를 '풍경화의 비극'을 발견한 화가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화가로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낭만주의 초기 시대에 자기 작품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만년에 그린 작품들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사후에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점점 기억 속에 잊혀 가다가, 20세기 초 그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시작되었습니다.
1906년 베를린에서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회화와 조각 32점으로 이루어진 전시회가 프리드리히에 대한 재평가의 시발점(일이 처음 시작되는 계기)을 이루었는데요.
(베를린 : 독일 동북부 브란덴부르크주의 중앙에 위치하며 주도인 포츠담과 인접해 있습니다. 체코와 폴란드의 국경 지역에서 발원한 슈프레강 유역에 위치하는데요.
시 면적의 약 1/3이 녹지와 강과 호수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호수가 많이 있습니다)
이어서, 2부에는 1930년대 나치가 정권을 잡게 된 후, 나치의 문화당국자들은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북구 유럽적 특징을 구현한 작품을 선정하였습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에 대해 잠깐 정리를 같이 해봤는데요.
다음 2부에서 이어서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정리해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낭만주의에서 중요한 화가 중 한명인 외젠 들라크루아에 대해서도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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